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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영월 여행 (청령포, 장릉, 왕과사는남자)

잼나이 62 2026. 2. 25.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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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 보고 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최근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면서 단종이 청령포에서 보낸 5년이 제 지난 50년과 겹쳐 보였습니다. 짧은 생애였지만 긴 여운을 남긴 그 이야기가 왜 지금 중장년층에게 와닿는지, 영월을 다녀온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청령포에서 발견한 시간의 의미

청령포는 영월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입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나룻배를 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이 땅에서 단종은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아이들 역사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다시 찾은 청령포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느껴졌습니다.

 

청령포(淸寧浦) –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단종 유배지

 

강물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단종이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열두 살에 왕이 되고 열일곱에 모든 것을 잃은 소년이 이 좁은 땅에서 보낸 시간은 어땠을까요. 실록에는 "노산군을 영월로 옮기다"는 짧은 기록만 남아 있지만, 그 사이에 설명되지 않은 감정과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 남편이 퇴직 전 3년간 영월에서 근무할 때 주말부부로 자주 오가며 이곳을 여러 번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느낌이 달랐습니다. 처음엔 그냥 유배지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곳이 "권력을 잃은 뒤 인간으로 남는 시간"의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50대 후반에 퇴직하고 귀농해서 제천에 정착한 지 3년이 지나니 어느새 60을 넘기고 있더군요.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고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청령포의 강바람은 묘한 위로가 됩니다.

중장년이 되면 성공이나 권력보다 시간과 사람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단종의 이야기가 단순한 왕위 다툼을 넘어 한 사람의 삶으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청령포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 아름다움이 고립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도망칠 수 없는 지형 속에서 단종은 무엇을 지키려 했을까요. 저는 그것이 품위였다고 생각합니다.

장릉에서 만난 복권의 의미

청령포를 돌아본 뒤에는 장릉으로 향해야 합니다. 단종은 생전에 왕의 자리를 되찾지 못했지만, 숙종 대에 복위되어 왕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능인 장릉은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고, 영월 사람들은 매년 단종을 기리는 행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릉(章陵) –단종의 능이자 영월을 상징하는 세계유산

 

장릉에 서면 역사가 냉정하지만 시간은 공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록은 단종을 정치적 패자로 기록했지만, 후대는 그를 충절과 비운의 상징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영월과 인연이 깊어진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청령포와 장릉에서 역사 공부를, 한반도 지형에서 지리 공부를, 별마로 천문대에서 과학 공부를, 동강에서 생태 공부를 시켰습니다. 재직 시절에는 직원 연수로 주천강 엄나무 백숙과 동강 래프팅을 즐겼던 적도 있습니다.

작년에는 전국귀농운동본부의 동강살리기 프로그램이 진행된 뼝창마을에서 일손을 도왔습니다. 엄흥도의 후손분이 사시는 곳이었는데, 단종과 끝까지 의리를 지킨 엄흥도의 우정 어린 이야기를 들으니 영화 속 장면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영월은 제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삶의 여러 순간을 함께한 곳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면서 울컥했던 이유는 단종의 짧은 생애가 제 긴 인생과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우리 인생도 긴 듯하지만, 막상 살아보면 순식간입니다. 단종의 이야기는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영월은 이제 '왕과 사는 남자' 덕분에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중장년층이 가봐야 할 여행지로 단연 추천하고 싶습니다. 청령포의 강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장릉에서 복권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단종을 만나는 동시에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해야 합니다. 단종이 짧은 생애 동안 지켜낸 것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무언가를 지켜가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참고: https://knw410.tistory.com/entry/%EC%99%95%EA%B3%BC%EC%82%AC%EB%8A%94%EB%82%A8%EC%9E%90-%EC%A4%84%EA%B1%B0%EB%A6%AC-%EB%B0%8F-%ED%9B%84%EA%B8%B0-%EC%B4%AC%EC%98%81%EC%A7%80